인생무상을 논하는건 덧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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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무상을 논하는건 덧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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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무상에 대해

 

 앞서 글의 제목을 인생무상 비판으로 지으려고 했다. 그 옛날 시대의 문학인들이 덧없는 삶에 대해 한탄하며 쓰인 글들의 분위기를, 비판하려는 취지에서였다. 일전에 학교에서 인생무상적인 성격을 지닌 작품을 다루었던 적이 있었다. 수업시간에 이색의 부벽루를 읽으며 느꼈던 감정이 얼마나 침울했던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을 정도였다. 어쩌면 공감되어서였을까. 그 수업 이후로 이 글을 쓰는 오늘까지 나름대로 인생무상에 대해 고민해보고 있다. 작품에 공감할 수 있으니, 이색이 살았던 시대와 내가 살고 있는 시대의 덧없음은 그리 큰 차이가 없었나 보다.

 

 인생무상은 본래 아무리 높이 올라도 결국 영원하지 않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사자성어이다. 이는 단순히 인생의 유한함을 일깨우는 뜻을 넘어 물질적인 삶을 비판하고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렇기에 "인생무상" 그 자체는 그리 허무하거나 침울한 뜻을 담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내가 이와 관련된 작품을 읽으며 침울함을 느낀 이유는 아마 시대를 뛰어넘은 공감이지 않을까 싶다. 작품이 쓰인 시대 또한 세속적인 삶과 물질적인 삶을 추구했다. 그렇기에 삶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은 범인류적인 고민이 되었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양한 작품에서 이를 시사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 소로의 월든, 그 밖에도 고전시가 작품이 대표적이다. 위의 작품은 약간은 침울하고 자기반성적인 성격을 가진다는 점에서 서로 유사하다. 위대한 유산에서는 신사의 세속적인 삶을, 월든에서는 문명사회에 대한 비판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의미 없는 삶도 괜찮다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남들에게 베풀고 의지를 다잡고 위험을 헤처 나가는 것 만이 의미 있는 삶에 속할까. 아니다. 삶의 의미는 행동이나 목표가 아닌, 관점에서 찾을 수 있다. 하루하루를 어떻게 사느냐가 아닌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내가 오늘 하루를 멍 때리며 허송세월처럼 보냈다고 생각해보자. 오늘 하루에 대해서는 의미 없는 시간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으로 이 상황을 바라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내일 있을 중요한 무언가를 위해 에너지를 충전했다고도 볼 수 있다. 해석의 여지가 남아있기에, 무조건적으로 하루를 쓸모없이 보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삶이란 곧 흐름이다. 고로 세상의 분위기에 맞출 필요도, 스스로의 감정에 동요될 필요도 없다. 필요하지 않다면 말이다. 삶이 꼭 성공적일 필요는 없으며 스스로의 가치관대로, 관점대로 살아간다면 충분히 성공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때로는 가치관을 바꾸는 선택을 감행하더라도 말이다.

 

 

덧없지 않다

 

 지금 내 상황이 가치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덧없는 삶이 되는 건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문제는 관점이 서로 달라서 생기는 '느낌'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다만, 스스로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잘 이해하고 있다면 아마 개인적인 기준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는 가능성이 올라간다. 꼭 사회적인 관점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덧 없는 삶이란 덧없음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삶이다. 의미 있는 삶이란 의미 있는 방향으로 사물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그 차이는 결코 절대적인 차이가 아니며 보편적이지도 않다. 그렇게, 보다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이 또한 아름답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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