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지 않는다는 착각

 

 어떤 선생님이든 질문하는 학생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질문한다는 건 학생이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는 증거고, 동시에 수업에 참여한다는 반증이니까. 그래서 많은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늘 질문하라 말한다. 그럼 어떻게 질문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답은 맨 처음 질문의 포문을 여는 단 한 명에게 걸려있다. 

 

 

왜 질문하지 않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나

 

 질문하지 않는 분위기는 크게 두 가지 요소가 중첩될 때 형성된다. 꽉 찬 오디오와 충분한 정보제공. 꽉 찬 오디오는 청자 입장에서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생각은 별다른 외부로부터의 자극이 들어오지 않을 때 뉴런 간 연결이 활성화되어 정보에 대한 심층적인 처리로 이루어진다. 만일 우리가 자극을 지속적으로 받는다면 그 자극을 처리하느라 자극에 대한 분석을 의식적으로 처리할 수 없다. 

 

 인간의 뇌는 자극을 처리할 때 크게 두 단계를 거친다. 지금 처리할 목표를 정하는 일과, 전에 처리했던 자극을 바탕으로 새로운 처리 방식을 활성화시키는 단계다. 우리의 뇌는 작업을 변경할 때마다 이 두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주위가 산만해진다. 집중을 위해 새롭게 만들어낸 처리방식을 다른 집중으로 옮겨버리면 애써 만들어놓은 처리회로를 다른 회로로 변경해야 하기에 집중시간과 수행속도는 느려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정보에 대해 생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을 정보에 대해 생각하기 위함이 아닌 정보를 기억하기 위해 수업에 참여한다. 이러한 목표의식에서 질문을 이끌어내기엔 학생 입장에서 부담될 수밖에 없다.

 

 질문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수업에서의 충분한 정보제공이 있다. 대게 선생님들은 수업 편의상 프레젠테이션 화면을 띄어놓고 단방향 강의식으로 수업하신다. 단방향 강의는 특성상 이미 잘 짜인 커리큘럼에 따라 정보제공을 목적으로 한다. 질문 유도에 꼭 필요한 "불충분한 정보"를 전달할 수 없는 구조다. 즉, 수업 내용에 대해 '왜'를 붙여버리면 중등교육기관 수업에서는 전달할 수 없는 학부내용으로 빠지거나, 근원적인 물음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 이 같은 충분한 정보제공은 수업내용을 기억하고 구조화하는 데에 탁월하나 수준급의 질문을 이끌어내는 데에는 부족할 수 있다.

 

 또한 대부분의 정보가 직렬구조로 이루어져 있어 각 정보집단간 연결점을 찾아내기 어렵다는 점도 한몫한다. 예를 들어 교과서 중심 수학수업의 경우 개념 설명, 개념 증명, 문제 해결의 순으로 되어있어 이미 질문의 핵심 내용을 관통하게끔 한다. 질문이 들 찰나에 이미 해결되어 버리고 만다. 질문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정보 간 병렬화가 중요하게 작용하는데, 학교 수업의 경우 정보의 기억이 우선시 되기 때문에 불충분한 정보를 규합하는 수업은 자칫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앞서 설명한 환경적인 면 외에도 심리적인 면 또한 작용한다. 내가 질문하면 열심히 수업듣고있는 다른 학생들에게 민폐가 될까 하는 우려가 그 대표적인 예시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대게 학생은 질문이 다른 이들에게 도움 되지 않는다면 놀림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까 두려운 마음이 크다. 마찬가지로 굳이 튀지 않고 조용하게 살아가는 게 유리한 환경에서 교육을 받고 자랐을 경우에도 질문을 꺼려한다. 한 마디로 남 눈치 보인다는 거다. 

 

 

Keystone

 

 질문하는 교실을 위해서는 키스톤 역할을 해줄 용감한 학생이 필요하다. 키스톤은 아치형 구조물의 균형을 잡기 위해 지탱하는 돌로 핵심적인 위치를 설명할 때 비유적으로 쓰이곤 한다. 이 같은 학생이 없다면 반 분위기는 정적이 맴돌거나, 반대로 학습 참여도가 줄어드는 현상이 발생한다. 지속적으로 학습과 관련된 질문을 하며 수업의 화제를 돋우는 사람, 학교에는 그런 학생이 필요하다.

 

 질문이 없던 분위기에서 누군가 질문을 시작하면 수업의 오디오가 비게된다. 또한 질문이 생기는 즉시 수업은 병렬구조를 띄게 된다. 순차적으로 진행되던 수업에서 다시 이전개념으로 돌아가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현상이 일어난다. 고로 앞서 정의한 질문하지 않는 분위기의 두 가지 요소는 모두 제거된다. 

 

 동시에 다른 학생들의 심리적인 요인도 변화시킨다. 일단 누군가 질문을 시작했으니 그다음 질문을 시작하는 건 상대적으로 눈치 보이지 않는다. 처음 질문을 시작한 학생과 연대하여 질문하는 사람의 집단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한 질문을 통해 생겨난 정적을 채우기 위해서라도 의무적인 질문을 꺼내게 된다. 인간의 의사결정 과정 중 현상 유지 편향은 매 순간 도래한다.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면 기존 현상을 채우기 위해 편향이 작동한다는 의미이다. 질문이 시작되기 전 선생님의 목소리는 유지되어 오고 있었고, 질문으로 인해 흐름이 끊겼다면 다시 선생님의 목소리를 채워야 한다. 선생님이 질문을 계속 받을 용의가 있다는 가정 하에 학생들의 질문은 지속될 수 있다.

 

 결국 질문의 시작은 정적을 깨는 일에서 출발한다. 

 

 위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은 개인적 경험을 공유하자면. 학교 수업의 일환으로 연구 기관를 방문한 때였다. 연구원 분들과의 질문 시간이 있었는데, 한 6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굉장히 길게 느껴졌다. 시계 초침 돌아가는 소리만 느껴지는 그 공허한 기분말이다. 그러자 학생 중 누군가가 질문을 시작했고 답변을 받았다. 이어 누군가가 질문을 시작했고 답변을 받았다. 그제야 다들 말문이 트였는지 각자 마음속에 숨겨두었던 질문을 꺼내기 시작했다. 질문은 그렇게 몇 분 간 이어졌고 나중엔 시간이 부족해 질문을 더 이상 받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때 느낀 개인적 경험은 아마, 누군가 질문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을거란 사실이다. 아무리 사소한 질문이라고 단순한 근원적 물음일지라도 누군가는 질문을 시작해야 질문이 지속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