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줄 필요 없다는 사실

형준의 에세이 #1

 

 카뮈의 철학에는 무의미함이 깔려있다. 

 

"우리들 각자는 최대한의 삶과 경험을 쌓아 가지만 결국 그 경험의 무용함을 너무나도 분명하게 느끼고 만다. 무용함의 감정이야말로 그 경험의 가장 심오한 표현인 것이다." 이십 대 초반이었던 1934~1935년 겨울에 이미 카뮈는 친구 막스 폴 푸셰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는 또한 ”그렇다고 해서 비관론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라고 못 박는다.

알베르 카뮈 이방인 187p

 

 삶이 무의미하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말란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카뮈는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카뮈의 철학은 시지프 신화에서 잘 드러난다. 시지프는 신의 분노를 사 지옥에서 벌을 받는다. 거대한 돌덩이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린 후 바위가 땅 밑으로 굴러 떨어지면 다시 또 밀어 올려야 하는, 영원히 떨어지고 밀어 올리기를 반복하는 형벌이다. 무의미하지 않은가. 카뮈는 오히려 무의미하기 때문에 자유롭다고 말한다. 무의미를 받아들이면서 주인공은 즐겁게 반복하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각박한 세상에서 카뮈의 철학은 웬지모를 안도감을 준다. 맹목적으로 살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 무의미 철학으로부터 허용된 자유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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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이 주는 공포는 되려 안도감으로 변한다. 작년 여름방학 익사의 공포를 처음으로 느끼고 든 생각이다. 이렇게나 쉽게 죽을 수도 있구나. 그런데도 살았다. 생명이란 끈질기구나. 그럼에도 어떤 이들은 죽는데. 인명은 재천인가 보다.

 

 죽음 앞에 놓였을 때 행복했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지난 삶을 돌아보니 후회는 없었다. 마침 1시간 전에 일기도 써놓았던 터라, 여한이 없었다. 그리고 죽겠다는 마음으로 몸에 힘을 뺐다.

 

 몸에 힘을 빼니 도리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살기 위한 몸부림을 멈춘 순간 역설적으로 살았다. 그렇게 파도를 타고 물 밖으로 휩쓸렸다. 그제야 안전요원이 등에 업고 의료실로 들어갔다. 간단한 처방을 받고 숨을 골랐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다.

 

 때론 힘을 빼고 살아야 한다. 너무 집착하지 말고 흘러가는 대로. 이 간단한 철학을 다들 잊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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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니 빌뇌브의 <듄>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두려워하지 말라. 두려움은 정신을 죽이고, 세계를 소멸시키는 작은 죽음이다.

주인공 일행이 거대한 모래폭풍을 만나 위험에 처하는 순간, 비행선의 엔진을 끄고 온전히 모래폭풍에 맡겨 같이 진동하는 장면이다. 

 

 두려워하면 잠깐 내려놓고 사색에 잠기자. 그 속에서 답이 나올지도.

 

 드니 빌뇌브 감독은 전체와 개인을 조망하는 뛰어난 표현력이 특징이다. <블레이드 러너 2049>도 그렇고 <듄>도 마찬가지다. 광활한 스페이스 오페라에서 개인의 감정과 상황을 조용하게 표현한다. 그만이 가진 특색이고 그래서 좋아한다.

 

 그의 영화를 보다 보면 평온해진다. 우주를 바라보는 기분마저 든다. 영화에 온전히 몰입하게 만들면서 몸에 힘이 쭉 빠진다.

 

 

 반면 내가 좋아하는 감독은 조셉 코신스키다. 최근 <탑건: 매버릭>을 연출하면서 스타덤에 올랐지만, 사실 그전부터 팬이었다. 2010년 <트론: 새로운 시작>을 보고서였다. 스토리는 최악이지만, 역시나 미장센은 독보적이었다. 그때부터 내심 히트작을 내놓기를 응원하고 있었다.

 

 코신스키 감독은 음악적 연출이 영화 전체의 분위기와 딱 맞는다. 장엄한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를 표현하기에 적합하다. 그래서인지 스페이스 오페라에 능하다. 

 

 드니 빌뇌브와는 대조적으로, 코신스키 감독의 작품은 대체로 스펙터클하다. 탑건을 보면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다. 빌뇌브 감독이 느슨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면, 코신스키 감독은 정반대의 스탠스를 취한다. 영화계에서는 두 감독을 비슷한 스타일로 묶어 놓았지만 둘이 추구하는 스타일은 엄연히 다르다.

 

 

 우리의 삶 또한 두 감독의 스타일을 모순적으로 가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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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최선을 다하면 큰일 난다. 인생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그 일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능력이나 체력을 남겨놓아야 한다.

- 김영하 <알쓸신잡 3>

 

 번아웃에 빠진 적이 있다. 3개월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체력의 100% 아니 그 이상을 소모하다 보니 벌어진 일이었다.

 

 김영하 작가가 한 말처럼 쉼도 필요하다. 모든일에 너무 힘 줄 이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