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 끝에 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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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도생 끝에 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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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자도생 끝에 관용] 시리즈 #1

 

 관용이 넘치는 사회는 어떤 세상일까. 처음 보는 사람에게 온갖 불평불만을 쏟아내도 뭐라 하지 않는 세상일까. 아님 남의 일에 신경 쓰지 않는 세상일까. 어쩌면 관용이 넘치는 세상은 모두가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이상 사회일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관용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았지만 관용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다. 이 글에서는 관용이 있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지를 상상해보며 현대사회에 어떻게 적용할지 고찰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겠다.

 

 관용이 있는 세상이란 그닥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는다.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히며 산산조각 나버린 관용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엔 쉽지 않다. 그러면 관용 있는 세상은 현실의 문제를 먼저 해결한 세상이 아닐까? 이 물음에 앞서 현실의 문제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해보아야 한다. 단순히 현실의 문제를 해결했다고 해서 관용 있는 세상이 만들어지지는 않으니 말이다.

 

 현실의 문제는 인간의 욕망에 의해 결정된다. 인간의 욕망을 쉽게 정의하기 위해 경제분야의 문제를 예시로 들어보겠다. 경제 관련 문제의 대부분은 불공정한 소득분배와 계층 격차로 설명될 수 있다. 그렇게 생겨난 격차는 우리로 하여금 욕망을 부추긴다. 과열된 욕망은 모두의 노력을 정량화하고 공정함을 중시하게 만든다. 이 같은 사회는 노력에 따른 대우가 달라지는 현상을 막기 위해 노력을 정량화하여 공정하게 배분하려는 정책으로 이어진다.

 이는 정성적으로 배분하는 시스템의 중요성을 간과하게 될 우려가 있다. 가령 정성적인 평가의 대표격인 예술부문에서 정량적으로 평가한다고 하면 작품의 수, 난이도, 들인 시간 등을 기준으로 삼게 된다. 그러나 예술은 주관적이고 시대적인 분야이며 정량적으로 판가름하는 일 자체가 예술적이지 못하다고 평가한다. 작가의 노력을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반대로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분야에는 무엇이 있을까. 대표적으로 교육이 있다. 교육은 학업성취도 즉, 시험을 통하여 학생의 능력을 규정짓고 이를 배분하기에 이른다. 이에 학생들은 제한된 1등급을 받으려 피나게 공부하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물론 정량적 평가가 정성적 평가에 비해 뒤떨어진다고 폄하하는 의도는 아니다. 각 평가방식에 대한 장단점이 확실하기에 옳고 그름을 가르기에는 무리가 있다.

 두 평가방식의 공통점은 모두 자원의 배분에 있다는 점이다. 한정된 자원을 놓고 누가 더 많이 가져갈지를 가르기 위한 제로섬 게임인 셈이다. 이를 두고 오로지 방법론에 의존한다면 그 이상의 문제에는 신경쓰지 못한다. 방법론에 관한 논의는 사회적으로 활발하게 진행되나 무엇이 문제이고 왜 문제인지는 확실하게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그럼 대체 왜 자원의 배분을 중요하게 생각할까. 직관적으로 모두가 많이 가져가기를 원하지만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는 답이 떠오르게 된다. 마치 뭐든지 많고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우리의 욕망을 시험대에 올려놓는일 처럼 말이다.

 

 욕망은 한정된 자원을 부추기는 현상으로부터 나타난다. 모든 일에 등급을 매기고 순위를 정한다. 모두가 순위에 들기 위해 노력한다면 하나의 가치관을 섬기려하고 그렇게 편중된 하나의 동아줄은 점점 부족해져만 간다. 그제야 다른 동아줄로 옮겨가려니 이미 다 타버린 후였다. 하나의 동아줄을 섬기기 위해 다른 동아줄을 태워버렸으니. 결국 살아남기 위해서는 맨 꼭대기에 있어야 한다.

 

 각자도생의 붕괴인 셈이다. 하나의 동아줄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세상에서 홀로 살아남기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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