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링크드인에 써놓은 글을 약간 수정한 글입니다. 글의 원문은 제 링크드인에 있습니다.
인간관계는 어렵습니다. 특히 저처럼 매번 연락하지 않는 사람들, 인간관계에 큰 공을 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몇 년 전 저는 인간관계를 수월하게 관리할 수 있는 몇 가지 정리를 만들었고 지금까지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이 정리를 통해 나름 괜찮은 인간관계를 유지했고 관계의 번잡함을 해결했습니다. 그럼, 이 포스트에서는 어쩌면 (제 입장에서) 완벽에 가까운 인간관계 전략을 알아봅니다.
1. 지성적 사고를 독려하는 사람들과
데카르트는 저서 <방법서설>에서 논리학의 번잡한 규정 대신 스스로 만든 규칙으로 결단을 내렸습니다. 아래 4개의 결단은 데카르트가 앞으로 성취할 인식과 학업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 첫째는 내가 명증하게 참이라고 인식하지 않은 어떠한 것도 결코 참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 조사한 어려움 각각을, 가능한 만큼 그리고 그 어려움들을 가장 잘 해결하기 위해 요구되는 만큼, 작은 부분들로 나누는 것.
- 가장 단순하고 가장 쉽게 인식되는 대상들에서 시작해 조금씩 단계적으로 가장 복합된 대상들의 인식에까지 올라가기 위해 내 사유들을 순서에 따라 인도하는 것.
- 내가 아무것도 빠뜨리지 않았다고 확실할 정도로 완전한 열거와 전반적인 점검을 어디서나 하는 것.
이러한 과정을 우리는 지성으로 정의합니다. 지성의 사전적 정의인 “지각된 것을 정리, 통일하여 새로운 인식을 낳게 하는 정신의 기능.”의 방법적 서술인 셈입니다. 그리고 이는 곧 인간관계에서도 통용됩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한 주제에서 다른 주제로 넘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수제 맥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서울에 잘하는 수제맥주집 이야기에서 그런 집이 많으면 부동산 가격이 오른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도로 폭과 부동산 가격의 상관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다가…”처럼 한 가지 인식에서 다른 인식이 나오는 지성적인 대화의 일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지성적이지 못한 대화는 이산적입니다. 대화의 주제는 주로 쾌락과 관계되어 있으며 내용은 과거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렇기에 미래지향적이지 않고 반성과 회고의 성격, 신세에 대한 한탄이 나오게 됩니다. 대게 술자리에서 벌어지는 온상과도 같은 성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자리는 한 번 나가고 다신 안나가게 됩니다. 지성은 양방향으로 동작합니다. 주변에 지성적인 사람들을 두고 싶다면 먼저 지성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가끔보면 일반적인 시선에서 벗어난 조금은 이상한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을 재단하며 파악하게 되면 대상에 대한 고정관념이 생길 수 있습니다. 생긴 고정관념이 긍정적이라면 모르겠으나 부정적이라면 장래에 있을 마찰에 신경질적으로 대응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매번 그렇게 대응하다 보면, 당사자도 당신에게 똑같이 대응하게 되며 결국 자신이 쏜 화살에 자기가 맞아놓고 명중이다 외친 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나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선택”할 뿐입니다. 그러한 선택이 때론 과장되어 보이거나 지나치게 판단하게 되어 본질을 흐릴 수 있습니다. 세상을 선하게 보려 노력하세요. 그럼 세상도 당신에게 선해지는 법입니다.
3. 거절의사를 명확하게 한다
저를 포함한 내향적 성격이 강한 사람들은 거절을 잘하지 못합니다. 얼마 전 괜찮은 동업 제안을 거절했었는데, 이때 “시간관계상”이라는 상투적인 이유였습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좋은 제안이었고 그분께서는 진심으로 다가와주셨지만 그럼에도 거절한 건 온전히 저를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거절은 어렵습니다. 먼저 다가와줌에 감사하기도 하고 이에 보답이라도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만약 그러한 부탁이 본인을 힘들게 하거나 부담이 된다면, 그럼에도 투자할만한 가치가 없다고 판단이 된다면, 불확실성을 감수할 만큼 여유가 없다면 거절해야 합니다. 지나고 보니 그러한 거절 뒤에는 어려움과 부담이 있었습니다. 적어도 인간관계에서는 자신의 그릇을 정확히 알고 그만큼 책임질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원칙은 이하 서술할 4번 원칙의 하위 요소이기도 합니다.
4. 배려는 나를 위해 시행되어야
나를 먼저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없다면 남들도 없고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좋은 사람이 곁에 남는 법입니다. 인간관계에서 지치고 있다면 취미활동을 시작하거나 여행을 가는 등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기적으로 생각하세요. 이타적인 마음도 내 마음이 온전치 못하면 실행될 수 없습니다. 당신의 행동에 대해 아무도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러니 말실수 조금 했다고 이불 킥하지 마세요. 속 좁은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나 자신에게 관대해야 합니다.
5. 삶을 비관하지 않기
비관은 삶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리사 펠드먼 베럿이 쓴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서 저자는 통제 신경망을 통해 인식을 범주화할 때마다 만들어지는 수많은 예측을 조율하며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고 서술합니다. 이때 예측을 수행함에 있어 과거에 배웠던 개념을 통해 범주화하게 되는데 이때 개념 자체가 비관으로 가득 차 있다면 예측 또한 비관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비관에 굴레에 빠지게 되는 것이지요.
게다가 비관이 삶에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건 아닙니다. 비관은 사회 전반에 걸쳐 악영향을 미칩니다. 베럿은 저서에서 "당신의 특정한 행동 방식은 다음 세대의 뇌 배선에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특정한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덜 소중하다고 가르치는 문화 속에서는 이런 사회적 실재가 해당 집단에게 물리적인 파급효과를 낳을 수 있다. 즉 이 집단은 더 낮은 봉급을 받을 것이며 이 집단의 아이들은 열약한 영양상태와 생활 조건에 처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요인 때문에 아이들의 뇌 구조가 악화될 경우 학교 성적은 떨어질 것이고 그러면 장차 이 아이들은 더 낮은 봉급을 받게 될 확률이 높을 것이다."[1] 라며 문화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서술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비관적인 생각이 행동으로 표현될 때 주변인들에게 전이될 수 있습니다.
저도 성장기에는 비관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자신의 삶에 회의를 가지고 비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때가 있었을겁니다. 그러나 비관적인 생각은 그때뿐이어야 합니다. 사회에 나가서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회인이 되어서까지 비관적인 생각이 지속된다면 큰 폐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비관을 배척하고 억압하라는 소리는 아닙니다. 오히려 비관은 잘만 사용하면 유용한 도구가 됩니다. 특정 시점에 특정 대상으로 가두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품을 만드는 입장에서 제품에 비관을 적용해야 디테일에 집착할 수 있고 고객 만족도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사실은 일론머스크와 토스의 이승건 대표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마인드입니다.
삶을 긍정하는 태도를 배워야 합니다. 비관을 도구로써 승격시키고 장기적으로는 삶을 긍정하는 격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적어도 어른이라면 자신의 삶이 가진 영향력에 책임져야 하는 법입니다. 나 스스로가 삶을 긍정함에 따라 주변에도 삶을 긍정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회 전체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1] 리사 펠드먼 베럿,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서울: 생각연구소, 2017),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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