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은 창작에 비해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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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은 창작에 비해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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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판 없는 글은 없다. 독자로 하여금 글의 형식이 형편없거나 지루하다면 누구나 쉽게 비판할 수 있다. 그렇게 생긴 비판의 이유는 참으로 다양하다. 가치관이 서로 맞지 않아서 생기는 비판이 대부분이지만 간혹 가다 건전한 비판을 마주하기도 한다. 필자는 건전한 비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또 다른 의견"이라고 생각한다.

 

 건전한 비판은 당사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든다. 글을 쓰다 보면 글의 목적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때가 허다하다. 이때 건전한 비판은 초점 잃은 문맥을 정확하게 꼬집으며 일맥상통하는 내용을 만드는 밑거름이 된다. 단적인 예로, 고등학교의 생활기록부가 있다. 생활기록부는 학교생활 전반의 이야기를 담은 기록물이다. 동시에 사람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 비판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생활기록부의 본래 목적은 학교생활에서의 다양한 활동과 모습을 입학사정관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작성하는 데에 있다. 때문에 부족한 학생이라면 비판점과 개선할 점에 대해 서술되어 있고 그렇지 않은 학생은 있는 그대로 작성되어있는 특징이 있다.

 

 학교생활에서의 일반적인 흐름에 어긋난 학생은 선생님의 재량에 따라 비판적인 기록으로 뒤덮일 확률이 크다. 몇몇 친구들이 생활기록부를 수정해달라며 교무실에 찾아가곤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비판에 대한 비관을 늘어놓는다. 만일 그 친구들이 비판을 토대로 반면교사 삼는다면 비판은 곧 성장으로 변화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그런 친구들을 비관해서는 안된다. 그 친구들은 나름대로의 인생을 창작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그렇기에, 창작으로 이루어진 삶을 살아오기 있기 때문에 함부로 멸시하거나 조롱해서는 안된다. 필자가 최근에 겪었던 사례로, 학교에서 껄렁껄렁한 친구를 만났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처음 이상한 걸음거리로 교실에 들어오는 친구를 보았을 때의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선생님에게 약간의 반항 섞인 말투와 그릇된 태도를 보이는 데에 있어 좋게보일리가 만무했다. 그 친구의 행동이 지속되자 나의 눈살도 점점 찌푸려졌다. 지각, 말투, 걸음걸이. 뭐 하나 안 걸리는 게 없었다. 그렇게 점점 알지도 못하는 친구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만 쌓여갔다. 급기야 어두워지고 있는 마음속의 정서를 발견했다. 마치 그 친구의 감정이 내 감정인 마냥 동화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곤 생각했다. 인식은 인식일 뿐이라고 인식에 감정이 쌓이면 그 인식에 부메랑처럼 돌아와 스스로를 잠식시킨다고.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반성했다. 

 

 결코 쉬운 삶은 없다. 쉬운 창작도 없기에 쉬운 비판도 없다. 건전한 비판을 위해서는 내가 지금 감정적인지 비판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상에 대해 비판하고 싶다면 주관적인 인식은 잠시 접어두고 상황에 집중해보는건 어떨까. 건전한 비판에는 대상에 대한 수용적인 자세가 선행되어야 하기에 비판 또한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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